『승자독식』은 중국을 자원전쟁의 승자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중국에 약간이나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중국이 아프리카 국가들과 활발한 자원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책에 따르면, 이는 중국이 해당국의 SOC를 지원하고 자원 채굴권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이 책은 두 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의 1장에서는 전세계의 자원 수요 및 공급 현황을 살펴보고, 세계적 흐름 속에서의 중국의 자원 외교를 조망한다. 그 뒤, 2장에서 중국의 적극적인 자원 외교가 세계 자원 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전망한다. 그 전에, 중국이 페루의 어떤 산 하나를 산 이야기를 꺼내면서, 어떻게 중국이 이러한 형태의 자본을 갖다가 투입할 수 있는지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국가 주도형이다. 중앙은행에서 국영 기업들이나 국가 그 자체에 초저리(혹은 이자율 0%)로 대출을 해 주고, 이 탄탄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에서 자원 채굴권을 사들이는 것이다.

전체적인 글의 구성은 좋은 편이다. 먼저 자원의 수요를 전체적으로 훑어본 뒤, 그 자원들의 공급 실태를 조망한다. 책에 따르면, 중국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자원의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신흥 경제권(소위 BRICs)의 자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으며, BRIC중에 C가 바로 중국이다.

그 뒤, 자원의 공급 실태에 대해 조망한다.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인 점은, 공급량 자체도 줄어들고 있으며, 세계 자원 수요에 맞추어 자원을 공급하려면 더욱 더 비싼 기술을 들여 자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특히 중국 국토의 서부 및 북부의 사막화를 지적하면서, 중국의 담수 자원이 심각하게 부족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 뒤, 2장에서는 중국의 자원 외교가 세계 시장 속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기술한다. 모든 면에 있어서 저자가 공통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앞으로의 중국의 생활 수준이 향상되면 향상될수록, 자원에 대한 수요 또한 늘어날 것이고, 중국 당국이 이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공급량을 확보하기 위해 활발하게 자원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부에서는 과연 중국 말고 다른 국가들은 이러한 자원 위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여러 가지 평이 있을 수 있지만, 우선 좋은 점부터 들자면 첫번째는 이 글이 마지막에 던지는 질문이다. 책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일반적인 국가들은 표심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단기적인 정책을 표방할 수밖에 없고, 자연히 장기적인 정책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러나, 책에서는 중국만큼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자원 정책을 잘 수립해 나가고 있다고 평한다. 이러한 논리 구조는 적어도 책을 읽어 본 사람들에게는 자국의 자원 정책에 대한 의문을 던질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로, 책이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것을 잘 끌어낸 장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위에서도 이야기한 글의 전체적인 구조이다. 중국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서두를 시작하고, 세계 시장 속에서의 중국의 위치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 세계 시장 속에서 중국의 자원 외교가 어떠한 양상으로 진행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그 뒤, 저자가 독자에게 생각해 보게 하려는 질문을 던지며, 위에 설명했듯이 그 질문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다만, 아쉬운 점도 몇 가지 있다. 첫번째로, 앞부분에서 자원 공급 현황을 설명할 때, 중국을 문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각 장의 소제목을 하나씩 반드시 차지한다. 1장의 결국 중국이 문제다”, 2장의 역시 중국이 문제다”, 4장의 중국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가 있다. 그나마 3장에서만 중국의 소비 대 세계의 공급제목으로 객관적인 서술을 진행하고 있다.

두번째로, 중국에 대한 책인데 중국에 대한 예시가 꽤 부족한 편이다. 비록 2장에서는 중국 이야기가 1장에 비해 많은 편이지만, 여전히 세계 속의 중국을 서술한다는 점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예시로 들게 되는 여러 주장들을 소개하는 선에서 서술을 잘라 버린다. 가령, “중국이 자원 보유국에 제공하는 도로와 다리, 건물들이 불량 자재로 부실하게 건설되는 바람에 환경을 훼손한다며...(하략/240p)” 라는 대목은 특히 문제시된다. 선진국들이 갖고 있는 중국의 편견을 상기시킬 가능성까지 열려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일부분의 주장일 수도 있는 것을 마치 전체적인 주장인 양 받아들이게 될 잠재적인 가능성이 생겨 버리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중국이 미래의 자원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벌이는 활동을 세계 시장의 관점에서 바라본 뒤, 그 의의를 하나하나 짚어 가면서 중국이 아닌 타국은 이런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이런 서술 구조는 그 질문에 다가가기에는 좋다. 하지만, 중국을 문제시했다는 점이 전체적인 주장의 객관성을 흐리게 한다. 또한, 중국의 행보를 반대하는 주장을 제시하는 한 대목에서는 중국에 대한 선진국들의 일반적인 편견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중국에게 수혜를 받는 지역인 잠비아 출신의 경제학자가 쓴 책이라는 점은 신선하면서도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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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저자 조 베넷의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다. 저자 조 베넷은 할인점에서 자신이 구매한 팬티가 어떻게 해서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탐구한다. 처음에 그가 탐정놀이를 시작했을 때, 그리고 그가 제조사와 판매사에 제안서를 보냈을 때, 처음에는 회사들이 반신반의한다. 그러나, 그의 꿈은 현실이 된다.

   그는 어떻게 자신이 팬티를 구매한 할인점이 중국에서 물건을 가져오는지로부터 그의 여정을 시작한다. 그 뒤, 그는 원단을 보러 취안저우의 킹스타 공장으로 향한다. 다음에 그는 좀더 부수적인 것에 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허리 밴드에 들어가는 고무 수급처를 알아내기 위해 태국으로 가고, 실에 들어가는 면의 수급처와, 원단에 들어가는 실의 수급처를 알아내기 위해 우루무치로 향한다. 결국 그는 그의 궁금증을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이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는 진솔하게 묘사하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그가 일개 팬티에서 궁금증을 느끼게 되었는지부터, 어떻게 그가 회사들과 연락하고, 어떻게 연줄을 대서 그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또한, 그는 그의 궁금증을 그냥 팬티에 대한 궁금증만으로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는다.

 “팬티는 상공업,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서양의 엄청난 무역 불균형을 의미하는 은유다.”

   본문에 있는 말이다. 그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점차 중국을 보는 눈이 진보해 간다. 처음에는 상하이의 단면만을 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 그는 점차 중국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된다. 겉은 민주화되어 있지만, 아직 부패가 판을 치는, 그리고 소수민족이 철저히 억압당하는, “중화민국이 중국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여러 가지 아쉬운 점들이 있다. 우선, 중국과 관련된 책인데, 방콕에 할애한 장이 전체 21장 중 3장이나 된다. 물론, 태국 방문이 팬티에 쓰이는 고무의 출처를 알아내기 위한 방문이라는 점에서는 이렇게 장을 크게 구성한 것이 이해가 가지만, 결론은 실패이다. 그런데, 그 실패의 과정을 서술하기에 두 장을 할애하기는 너무 길다. 게다가, 그는 태국에서의 지극히 일상적인 경험에 대한 서술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홍등가 이야기까지 잡이야기거리로 곁들고 있다. 이는 중국을 알아보는 책이라는 점에서는 통일성을 심각하게 깎아내리는 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서 다루는 장소의 한계가 있다. 그는 중국의 전역을 누빈 것이 아니다. 그가 간 중국은 신강위구르 자치구(우루무치), 푸젠 성(취안저우), 저장 성(이우, 윈저우), 상하이로 크게 다섯 곳이다. 게다가, 모두 도시이다. 그가 농촌을 탐구 대상으로써 둘러본 적은 목화밭이나 윈저우 근교 농촌을 빼고는 없다. 이는 작가의 궁금증에서 기인한다.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답이 중국일 뿐이고, 중국 안에서도 우루무치를 빼고는 모두 공장에 답이 있다. 만일 그가 자신이 산 팬티만의 질문에서 그치지 않았다면, 아마 그는 좀 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중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중국을 느꼈을 것이다. 그랬다면 좀더 진짜중국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참고 자료의 부족이다. 책의 서술 수준에 비춰 보면, 작가가 예상하고 있는 독자층은 지식인들이 아니다. 일반 시민들 중 중국에 대해 약간의 흥미가 있거나, 혹은 그 흥미를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 밖의 도시가 등장한다. 바로 취안저우와 이우, 윈저우이다. 이들은 중국의 공업도시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며, 모두 해안 혹은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일반 독자들은 지도를 보지 않고서는 왜 이들 도시가 성공했는지 책 안의 정보만으로는 알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정리하자면,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는 저자의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해 중국을 파헤쳐 내려간 책으로, 솔직한 진술이 특징적인 것은 좋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을 더 많이 남기는 책이다. 우선, 중국을 탐구하는 책인데 방콕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또한, 저자의 질문이 이 팬티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이었기 때문에 활동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성급한 일반화의 여지를 남겼다는 점, 그리고 참고 자료의 부족은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사진]책 후반부에 나오는 저자 조 베넷이 목화밭에서 팬티만 입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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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영화만 가지고 설명하기 때문에 관점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참고 : 사진은 영상에서 캡쳐한 것이다.)

다루게 될 영화는 3편이다.

Transformers : Revenge Of The Fallen(2009) - 한국에선 속칭 "트랜스포머 2"

Mission Impossible III(2006)

Code 46(2003)


물론 할리우드 영화다 보니 상하이의 모든 것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이들 영화에는 큰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들에게 상하이는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도시일 뿐이고, 푸동 지역이 아닌 주변 지역은 그저 스토리의 진행을 돕기 위한 주변 배경으로써의 역할만 하게 된다.

[사진]순서대로 위에서부터 트랜스포머 2, 미션 임파서블 3, 코드 46

세 영화 모두 사진과 같이 상하이를 묘사한다.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고, 그 경제체제 속에서 계속 번영해 나가는 도시를 상징한다.

트랜스포머 2에서의 나오는 상하이는 이 푸동 건물들이 거의 전부라고 봐도 된다. 나머지 장면들은 단지 추격전의 배경일 뿐이다. 이는 미션 임파서블 2에서도, 코드 46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그나마 미션 임파서블 2나 코드 46이 약간 두드러지는 것은 상하이 서민의 생활상을 약간이나마 묘사해서일 것이다.

[사진]위에서부터 순서대로 트랜스포머 2, 미션 임파서블 3, 코드 46


그런데, 약간 생각해 볼 영화가 있다. 바로 코드 46이다.

[사진설명]코드 46에서의 주요 등장인물, 좌측에서 두번째가 남자주인공 윌리엄 겔드, 세번째가 여자주인공 마리아이다.

대도시의 "상류층"인 윌리엄 겔드는 상하이 중하류층 "마리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윌리엄이 상하이에 온 원래 목적은 상하위 층 지역 간의 금지된 움직임을 몰래 주선하는 사람을 색출해 내는 것이다. 거기에, 영화 속의 사회는 복제가 만연해 있고, 또한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결혼도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마리아가 윌리엄의 어머니와 유전적으로 50%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둘의 사랑은 유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의 결혼을 금지시키는 "코드 46"을 위반한 것이 된다. 거기에, 첫 방문에서 마리아가 임신을 하게 되는데, 윌리엄이 집으로 돌아간 사이, 마리아는 낙태당하고, 윌리엄과의 사랑과 관련된 기억도 지워지게 된다. 다시 윌리엄이 상하이로 돌아가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하지만, 이번에는 이제 그가 상하이에서 나가지 못하게 된다. (이하 생략)




왜 그 사랑은 상하이에서 일어나는 걸까?

대략 생각하기에는 상하이의 도시 특징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상하이는 옛날에는 그저 그런 항구 도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1842년 난징 조약에 의해 개항된 이후 자본주의 세력들의 개항장으로 이용되면서 일차적으로 번영하였고, 계속해서 중화민국 때에도 열강들의 조계지가 밀집한 지역으로써 계속 경제적으로 부흥했다. 공산 중국 치하에서도 개혁·개방 체제 시대에는 푸동 지역이 대대적으로 개발되면서 또 한 번 경제적 부흥을 맞게 된다. 반면, 모든 도시들이 다 그렇듯이 주변 지역은 서민층이 사는 곳이다. 당연히 도심에 비해 낙후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심과 주변 지역과의 대조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특성이 아마 영화 "코드 46"에서 윌리엄과 마리아의 사랑을 상하이에서 그려낸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해 본다. 경제적으로는 엄청난 부흥을 달리는 상류층들의 도시이다. 그러나, 위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하층 지역과 상층 지역(푸동)과의 차이가 극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상하위층이 분리되어 있는 사회를 그려내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코드 46에서의 상하이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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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 리치

 

마테오 리치는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로, 1582년에 중국에 들어왔다. 그는 선교를 위해 자기 자신이 중국인화되는 방법을 취했다. 그는 여러 서양 과학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는가 하면, 서양의 문화와 예술을 전했고, 지식인들이 거부감 없이 기독교를 수용할 수 있게끔 노력하였다. 하지만, 그가 전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는 데에 있었다. 그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는 여태까지의 중화 사상에 경종을 울렸고,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지리 지식을 전하였다. 얼마나 선구자적이었으면 그가 곤여만국전도에서 최초로 사용했던 용어인 "대서양"과 "구라파"는 지금도 쓰일 정도니 말이다.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중국의 상황을 유럽에 전했고, 이는 동서 무역에 공헌할 만한 사실이었다.

이후에도 예수회 측에서는 건륭제가 중단할 때까지 계속해서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어느 정도의 성과는 거두고 돌아왔다.

 




[참고 문건]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144~145.

http://ko.wikipedia.org/wiki/%EB%A7%88%ED%85%8C%EC%98%A4_%EB%A6%AC%EC%B9%98

:

백련교

 

백련교는 대승 불교와 중국의 민간 신앙이 혼합된 종교이다. 중국의 민간 신앙에 불교의 미륵불 사상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종교는 중국 역사를 뒤흔든 사건들의 뿌리가 된다.

* 홍건적의 난(1348~1368)

당시 백련교 교주였던 한산동과 유복통은 한산동이 미륵이니 왕이 되어야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면서 원 정부에 저항했다. 이는 곧 좌절되었지만, 이 때 반란군들이 쓰던 붉은 두건은 그대로 남았다. 이후 주원장은 다른 반란 세력보다 우위에 서면서 주도권을 잡았고, 남경에 명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 백련교도의 난(1796~1805)

명 건국 이후 음지로 숨어들은 백련교는 마니 교의 평등주의와 금욕주의와 결합하면서 종말적인 메시아 신앙을 갖게 되었고, 청 정부가 이들을 탄압하자 반란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군은 쉽지 않았다. 청 정부군은 게릴라전을 통해 백련교군의 보급선을 끊었고, 결국 백련교도들은 1805년에 궤멸당했다. 하지만, 이 난을 진압하느라 청 정부가 지출한 은 약 1 8천만 냥 정도의 거액은 청조를 재정적으로 쇠퇴하게 만들었다.

*의화단 운동 - 근대사이므로 생략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130~131, 166~167.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B%A0%A8%EA%B5%90

http://ko.wikipedia.org/wiki/%ED%99%8D%EA%B1%B4%EC%A0%81%EC%9D%98_%EB%82%9C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B%A0%A8%EA%B5%90%EB%8F%84%EC%9D%98_%EB%8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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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

 

안∙사의 난은 755년부터 763년까지 절도사 출신인 안록산과 사사명이 당 정부에 반발해 일어난 난이다. 안∙사의 난 당시의 당은 엄청난 혼란기였다. 조용조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호적 위조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면서 국가의 세수는 물론 부역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에, 군사력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중앙에서는 관리들은 썩을 대로 썩었고, 환관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거기에, 측천무후 때 억눌려있던 귀족 세력까지 강하게 발호하고 나서면서 황제가 어떻게 하기가 힘든 상황이 돌아왔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안록산과 사사명의 반란이 일단 성공한 뒤에는 권력 암투가 벌어졌고, 결국 763년 안사의 난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난 이후 당나라의 많은 것들이 변경되었다. 당시 균전제가 깨진 상황을 반영해 농민들의 세금 부과 단위를 인두(人頭)에서 토지로 변경하였고, 모병제가 사라지면서 부병제가 시작되었다. 안사의 난 이후, 변경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어 있던 번진이 대부분 내륙, 특히 내란이 잘 일어날 것 법한 곳에 배치되면서 국방력이 약해졌다. 거기에, 일부 번진은 절도사가 징세권, 사법권, 군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소왕국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추세로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 당은 절도사 주전충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80~83,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C%82%AC%EC%9D%98_%EB%8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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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중국 통치

 

원나라의 중국 통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몽골인 제일주의를 시행하였으며, 최고위층은 몽골인들이 독식했고, 그 아래의 중상위 계층에는 색목인이 있었다. 이 둘을 다 합쳐 봐야 원나라 전체 인구의 3%였다. 한족들도 옛 금나라 땅에 살던 한인보다는 옛 남송에 살던 한인들을 더 천시했다. 원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한인들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애초부터 시스템상 막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족들이 아예 관직 진출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던 관직은 중하급 직위일 뿐이었으며, 이마저도 한족의 총인구에 비례하면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가능했다. 그나마 이들 관원들 아래에 수령관과 서리가 위치해 있었고, 이들에 의해 실무가 처리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족의 수는 많고,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원 이전 시대에 관료 집안이거나 본인이 관료였다고 해도 그것이 관직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1315년에 과거가 부활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총인구 수에 비해서는 정원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당시 한족들 사이에서는 지식인들이 관료나 서리가 되지 못하면 일반 민중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정치적인 입신양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들의 열정은 문화 쪽으로 향했다. 이들의 삶의 목표가 문화적인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문인 화가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고 체계화된 것이나, 원극이라는 중요한 연극 양식의 발생이 이를 대변한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122~123,

http://ko.wikipedia.org/wiki/%EC%9B%90%EB%82%98%EB%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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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사상

 

도가 사상은 춘추 시대에 노자와 장자가 설파한 사상이다. 도가 사상은 도의 존재와 무위자연을 설파하였으며, 이상 사회로 소국과민 사회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소국과민 사회란 소공동체를 의미한다.) 도가 사상은 당시 큰 정치적 지지를 얻지는 못하였으나, 후일 한 대에 들어서 오두미교로 발전하였고, 이는 여러 과정을 거쳐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구겸지에 의해 도가 사상이 도교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 때를 전후해서 귀족층에게도 도가 사상이 널리 퍼져 청담 사상이 유행하는가 하면, 죽림칠현이 등장했으며, 도교의 기본 정신인 탈속세, 자연과의 합일은 당시 문화의 주요 코드로써 기능하였다.

도교는 이후에도 중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바로 뒤 당 왕조 때는 도교가 황실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하였고, 이는 송 때까지 이어졌다. 특히, 현세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상은 농민들의 요구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여러 농민 봉기의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현대 중국인들에게까지도 도교는 마음 속 깊이 뿌리박혀 있다. 각종 신화와 관련된 신의 숭배라던가, 관우상에 대한 숭배 등이 현대 중국에서의 도교의 영향을 반영한다. 중국인들이 믿는 모든 종교에는 도가적인 요소가 들어있다고까지 말할 정도니 말이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26~27,

http://ko.wikipedia.org/wiki/%EB%8F%84%EA%B5%90

http://ko.wikipedia.org/wiki/%EB%8B%B9%EB%82%98%EB%9D%BC

http://ko.wikipedia.org/wiki/%EC%86%A1%EB%82%98%EB%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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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의 발생과 변천(~성리학)

 

유학의 발생은 저 멀리 춘추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3세기 경에 출현한 공자는 예악과 인의를 중심으로 백성들을 교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여러 경전들이 출판되었으나, 이는 진()나라의 분서갱유에 의해 거의 자취를 감췄고, 분서갱유 이후 이들 책들이 복원되었을 때는 이미 이들 책들의 진위 여부를 알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당시 학자들이 책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대의 유학은 경전을 복원하고, 그에 대한 주석을 다는 훈고학이 유행하였다.

이 와중에 한 무제 때 사람인 동중서는 유학을 기반으로 개혁 건의안을 내놨고, 무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유학은 한층 더 지위가 올라갔다. 이후 유교는 지속적으로 통치 이념으로서의 지위를 굳건히 했으며, 당 때는 오경정의가 완성되어 경전에 대한 해석이 통일되었다. 이후 송대에 들어서는 성리학이 발생하였으며, 유교 경전에 대해 오경정의와는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이러한 성리학적 신지식은 남송 대에 들어서 주희에 의해 집대성되었으며, 남송 이종은 성리학자들을 대거 등용하게 됨으로써 성리학이 유학의 주류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열어 주게 된 것이다.

이후에도 성리학은 명 대까지 계속해서 통치 이념으로 자리잡았으며, 양명학이 발원하는 계기를 마련해 줌으로써 유교 발전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26~27, 40~41, 106~107.

http://ko.wikipedia.org/wiki/%ED%9B%88%EA%B3%A0%ED%95%99

http://ko.wikipedia.org/wiki/%EC%9C%A0%EA%B5%90

http://ko.wikipedia.org/wiki/%EC%84%B1%EB%A6%AC%ED%9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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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의 대원정

 

정화의 대원정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영락제와 선덕제가 재위하던 기간 동안 환관 정화가 대함대를 이끌고 인도양을 누빈 것을 말한다. 정화의 함대는 인도양을 누비면서 참파, 자바, 시암, 실론, 바자야나가르 왕국, 티무르 제국, 예멘, 아프리카 동부에 기착하였으며, 일부 함대가 아메리카 대륙까지 항해했다는 설도 있다.

영락제가 이 항해를 지시한 이유는 내분 잠재우기와 조공 질서 확립이었다. 정난의 변으로 조카한테서 제위를 찬탈한 영락제는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정통성을 확립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주라는 이미지가 필요하였다. 거기에, 자신이 몰아낸 전 황제 건문제가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도 한 몫 했다. 강력한 군주라는 이미지를 만들려면 대외적으로도 명의 강력함을 보여야 됐다. 실제로 정화의 대원정 때 많은 수의 국가들이 명과 조공 무역을 하기에 이르렀을 정도이다. 당시 중국의 과학기술도 수준급이었다. 총지휘선인 보선은 전장 138m, 선폭 56m 정도로,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대형 선박이었다.

그러나, 정화의 원정이 끝나자 명 조정에서는 관련 기록을 모두 없애고, 정화의 함대가 탔던 배까지 싹 불태우게 된다. 그 뒤, 명나라는 바닷길을 통한 무역을 거의 하지 않았다.

원정을 중단한 것은 그렇다고 쳐 보자. 그렇다면 왜 배까지 불태운 것일까? 이 배들은 한번에 초다량의 병사들과 선원, 그리고 가축까지도 태워 갈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런 군사작전에 요긴한 배를 태워 없애 버렸을까? 의문이 남는 대목이다.

 

빨갛게 덧칠한 선이 정화의 원정로이다.



이미지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cid=796&docId=955767&categoryId=1544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134~135p.

http://ko.wikipedia.org/wiki/%EC%A0%95%ED%99%94_(%EB%AA%85%EB%82%98%EB%9D%BC)

http://ko.wikipedia.org/wiki/%EC%98%81%EB%9D%BD%EC%A0%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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