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혁명

 

신해혁명의 기저에는 1800년대 들어 서양 열강과 체결한 여러 조약으로 인해 추락한 청의 현실이 있었다. 1800년대를 거치면서 한족들의 만주족 왕조에 대한 충성심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편전쟁 패배, 청일전쟁 패배, 위화단 운동 등 중대사에 직면한 청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열강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는 처참했다

한편, 그 흐름을 타고 중국 내∙외부에서는 혁명에 대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 선두에는 쑨원(孫文)이 있었다. 쑨원은 청일 전쟁 시기에 하와이와 홍콩에 홍중회를 세웠고, 1905년에는 국내의 중소 규모 단체들을 전국적으로 합쳐 중국 혁명 동맹회를 세웠다. 중국 혁명 동맹회는 점차 혁명의 이념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 나갔고, 변경에서 봉기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혁명의 본격적인 도화선을 당긴 사건은 1911 10 10일에 일어난 우창 봉기였다. 우창 봉기가 성공하면서 호남성, 섬서성, 강서성을 시작으로 점차 혁명에 참여하는 지역이 늘어나게 되었으며, 11월경에는 반 이상의 성이 청조로부터 독립하였다. 하지만, 대형 걸림돌이 있었다. 청조에서 위안 스카이로 대표되는 북양 신군을 시켜 혁명을 진압하게 시킨 것이다. 하지만, 위안은 오히려 상하이 부근에서 혁명군과 협상을 벌여 혁명군 편에 섰고, 뒤이어서 청조는 멸망하게 되었다. 곧이어 손문이 돌아와 1대 대총통에 취임하면서 아시아 최초의 민주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성립되었지만, 위안을 최종적으로 혁명파 쪽에 편입시키기 위해 대총통의 자리를 위안에게 양도하였다. 하지만, 위안은 자신이 황제가 되기 위해 강력한 독재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고, 당시 자신을 견제하던 최대 세력인 국민당의 당수를 암살하기까지 했다. 이어진 혼란 속에서 위안은 1916년 황제에 취임하려다가 실패했고, 결국 지병이 도져 병사하고 말았다. 그 뒤, 화북 지방은 군벌 간의 혼전이 벌어지면서 격동의 시기를 겪게 되었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184~185p.

http://ko.wikipedia.org/wiki/%EC%8B%A0%ED%95%B4%ED%98%81%EB%A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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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

 

[사건 개요]

조선에서 동학 농민 운동이 발발하자, 명성황후는 청에게 진압군 파병을 요청하고, 김옥균의 암살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일본은 청이 톈진 조약(1885)에 의거해 조선 파병 사실을 알리자, 기회를 노려 조선에 병력을 파병하게 된다. 일본군은 고종을 협박해 정권을 장악하고, 일본군을 저지하려고 청에서 추가로 파병된 북양 함대를 황해에서 대파하게 된다.

[왜 이 사건을 다루는가]

이 사건의 결과 때문이다. 북양 함대로 대표되는 청의 신식 군대는 양무(洋務) 운동의 결과물이었다. 양무 운동은 중체서용(中體西用)이라는 표어를 내세웠다. 중국의 전통적인 정신은 그대로 유지하고 서양 문물을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들여 와 중국을 근대화시키겠다는 뜻이었다. 이 양무 운동의 주축이 태평 천국 운동의 진압에 크게 공을 세운 이홍장(李鴻章)과 증국번()이었다. 그러나, 내부적 비효율성과 국가적 지지 획득의 실패로 얼룩진 양무 운동은 결국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해 실패한 개혁임이 드러나게 된다.

[이 사건의 결과]

1. 북양 해군이 황해에서 대파됨으로써 양무 운동이 실패한 개혁임이 입증되었다.

2.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일본에게 타이완을 할양하도록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청의 대외적 무력함을 입증하는 꼴이 되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주도권도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나중에 가서는 정부 주도의 개혁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의 출발점이 되는 사건으로 작용하였다. 이는 나중에 신해혁명 때 최종적으로 폭발했다.

[개인적 평]

위에서 청일전쟁의 결과 동아시아의 정치적 주도권이 청에서 일본으로 넘어갔고, 반정부파가 생겨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결과를 설명했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로 합칠 수도 있다. 바로 중화 질서 붕괴의 연장선상이라는 점이다. 아편 전쟁에서 난징 조약과 톈진 조약(1860)으로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이 그래도 좀 자주성을 회복하고 살아 보겠다고 벌인 것이 양무 운동이다. 그런데 이 양무 운동이 청일전쟁의 패배로 인해 실패한 개혁임이 입증되었다. 여기서 양무 운동에 희망을 걸고 있던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과연 이러한 사람들이 계속하여 정부를 신뢰할까? 아무래도 아니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듯 싶다.

 

[참고한 문서]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178~179p.

http://ko.wikipedia.org/wiki/%EC%B2%AD%EC%9D%BC%EC%A0%84%EC%9F%81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D%99%8D%EC%9E%A5

http://ko.wikipedia.org/wiki/%EC%A6%9D%EA%B5%AD%EB%B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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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 전쟁

 

아편 전쟁은 1839년부터 1842년까지 일어났던 제 1차 아편 전쟁과,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일어났던 제 2차 아편 전쟁을 통틀어서 이르는 말이다. 1차 아편 전쟁의 밑바닥에는 영국의 무역 패턴 변화가 있었다. 중국으로부터 차, 비단, 도자기를 지속적으로 수입하고 있던 영국은 당시 수출 품목이 시계 등 사치품에 국한되어 만성적인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무역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영국은 아편 밀무역을 단행하였으며, 그 결과 영국은 1826년부터는 대청 무역 수지가 흑자로 돌아서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편, 아편 밀무역으로 인해 은의 유출이 심각해져 은본위제가 혼란해졌고, 이는 경제 위기는 물론 민생 불안까지 초래했다

결국 청 정부는 임칙서(林則徐)를 광저우에 파견하였으며, 임칙서는 당시 광저우에 있던 아편을 전량 몰수해 소각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를 구실삼아 영국은 청에 대해 전쟁을 개시하였고, 그 결과 난징 조약 및 기타 부수 조약들로 인해 청은 열강들의 이권 각축장으로 전락하게 될 기반을 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특히, 홍콩 할양 및 조계지 개념의 확립은 앞으로 열강들이 청에 진출하게 될 기반을 내어 주는 셈이 되고 말았다. 그 이후에, 태평 천국 운동이 진압된 이후, 1856년 영국은 애로 호 사건을 구실로 청을 다시 침락하였다. 이 때 맺어진 톈진 조약(1858)은 열강들의 영사가 북경에 주둔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당시 맺어진 베이징 조약으로 인해 청은 연해주를 러시아에 할양하게 되었다. 또한, 이러한 서양 열강들의 형태를 일본이 답습해 일본은 1876년에 조선과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172~175p.

http://ko.wikipedia.org/wiki/%EC%A0%9C1%EC%B0%A8_%EC%95%84%ED%8E%B8_%EC%A0%84%EC%9F%81

http://ko.wikipedia.org/wiki/%EC%A0%9C2%EC%B0%A8_%EC%95%84%ED%8E%B8_%EC%A0%84%EC%9F%81

http://ko.wikipedia.org/wiki/%EB%82%9C%EC%A7%95_%EC%A1%B0%EC%95%BD

http://ko.wikipedia.org/wiki/%ED%86%88%EC%A7%84%EC%A1%B0%EC%95%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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