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

 

백련교는 대승 불교와 중국의 민간 신앙이 혼합된 종교이다. 중국의 민간 신앙에 불교의 미륵불 사상이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종교는 중국 역사를 뒤흔든 사건들의 뿌리가 된다.

* 홍건적의 난(1348~1368)

당시 백련교 교주였던 한산동과 유복통은 한산동이 미륵이니 왕이 되어야 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면서 원 정부에 저항했다. 이는 곧 좌절되었지만, 이 때 반란군들이 쓰던 붉은 두건은 그대로 남았다. 이후 주원장은 다른 반란 세력보다 우위에 서면서 주도권을 잡았고, 남경에 명나라를 건국하기에 이른다.

* 백련교도의 난(1796~1805)

명 건국 이후 음지로 숨어들은 백련교는 마니 교의 평등주의와 금욕주의와 결합하면서 종말적인 메시아 신앙을 갖게 되었고, 청 정부가 이들을 탄압하자 반란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군은 쉽지 않았다. 청 정부군은 게릴라전을 통해 백련교군의 보급선을 끊었고, 결국 백련교도들은 1805년에 궤멸당했다. 하지만, 이 난을 진압하느라 청 정부가 지출한 은 약 1 8천만 냥 정도의 거액은 청조를 재정적으로 쇠퇴하게 만들었다.

*의화단 운동 - 근대사이므로 생략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130~131, 166~167.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B%A0%A8%EA%B5%90

http://ko.wikipedia.org/wiki/%ED%99%8D%EA%B1%B4%EC%A0%81%EC%9D%98_%EB%82%9C

http://ko.wikipedia.org/wiki/%EB%B0%B1%EB%A0%A8%EA%B5%90%EB%8F%84%EC%9D%98_%EB%8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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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의 난

 

안∙사의 난은 755년부터 763년까지 절도사 출신인 안록산과 사사명이 당 정부에 반발해 일어난 난이다. 안∙사의 난 당시의 당은 엄청난 혼란기였다. 조용조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다. 호적 위조가 공공연하게 자행되면서 국가의 세수는 물론 부역에 동원할 수 있는 인력에, 군사력까지 떨어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중앙에서는 관리들은 썩을 대로 썩었고, 환관들이 득세하고 있었다. 거기에, 측천무후 때 억눌려있던 귀족 세력까지 강하게 발호하고 나서면서 황제가 어떻게 하기가 힘든 상황이 돌아왔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안록산과 사사명의 반란이 일단 성공한 뒤에는 권력 암투가 벌어졌고, 결국 763년 안사의 난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 난 이후 당나라의 많은 것들이 변경되었다. 당시 균전제가 깨진 상황을 반영해 농민들의 세금 부과 단위를 인두(人頭)에서 토지로 변경하였고, 모병제가 사라지면서 부병제가 시작되었다. 안사의 난 이후, 변경의 방어를 위해 설치되어 있던 번진이 대부분 내륙, 특히 내란이 잘 일어날 것 법한 곳에 배치되면서 국방력이 약해졌다. 거기에, 일부 번진은 절도사가 징세권, 사법권, 군사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는 소왕국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추세로 계속 나락으로 떨어진 당은 절도사 주전충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80~83,

http://ko.wikipedia.org/wiki/%EC%95%88%EC%82%AC%EC%9D%98_%EB%82%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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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의 중국 통치

 

원나라의 중국 통치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몽골인 제일주의를 시행하였으며, 최고위층은 몽골인들이 독식했고, 그 아래의 중상위 계층에는 색목인이 있었다. 이 둘을 다 합쳐 봐야 원나라 전체 인구의 3%였다. 한족들도 옛 금나라 땅에 살던 한인보다는 옛 남송에 살던 한인들을 더 천시했다. 원에 끝까지 저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결과, 한인들은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애초부터 시스템상 막혀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족들이 아예 관직 진출까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할 수 있던 관직은 중하급 직위일 뿐이었으며, 이마저도 한족의 총인구에 비례하면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가능했다. 그나마 이들 관원들 아래에 수령관과 서리가 위치해 있었고, 이들에 의해 실무가 처리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족의 수는 많고, 일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되어 있다는 데 있다. 아무리 원 이전 시대에 관료 집안이거나 본인이 관료였다고 해도 그것이 관직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1315년에 과거가 부활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총인구 수에 비해서는 정원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당시 한족들 사이에서는 지식인들이 관료나 서리가 되지 못하면 일반 민중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정치적인 입신양명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들의 열정은 문화 쪽으로 향했다. 이들의 삶의 목표가 문화적인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며, 문인 화가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고 체계화된 것이나, 원극이라는 중요한 연극 양식의 발생이 이를 대변한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pp. 122~123,

http://ko.wikipedia.org/wiki/%EC%9B%90%EB%82%98%EB%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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