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1) 선전 시 지도(옛날 버전/현재 바오안 구 동쪽과 룽강구 동남쪽이 새로운 행정구로 분리되었다.)

선전 시는 지도에서 알 수 있듯이 홍콩특별행정구 바로 위에 있는 도시로, 남쪽의 4개 구(난산구, 푸텐구, 뤄후구, 옌텐구)는 덩샤오핑이 지정한 중국 최초의 경제 특구이다. 이 경제 특구의 성공으로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가속화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현재의 선전은 중국 전자 공업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선전 시는 홍콩의 위성 도시라고 볼 수도 있다. 매일 3만여 명의 선전 시민이 홍콩으로 출퇴근하거나 등교하며, 두 지역 간 출입 제한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 또한, 홍콩에서 선전으로 들어가는 국경선 버스 노선만 6개에 이르며(B1,B2,B2P,B3,B3A,B3X), 홍콩 지하철 동철선의 Lo Wu(羅湖)역과 Lok Ma Chau(落馬洲)역은 각각 선전 지하철의 Luohu(罗湖)역, Futian Checkpoint(福田口岸)역과 국경을 맞대고 연결되어 있다. 홍콩에 비해 싼 물가 덕에 일부 홍콩인들이 선전으로 쇼핑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림2) 선전 시에서 운영하는 전철 회사들의 마크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홍콩의 영향이다. 위에서 서술했다시피 홍콩의 후광을 입고 발전한 선전은 여러 면에서 홍콩의 영향을 받았다. 첫 영향은 지하철 시스템이다. 위에서 볼 수 있다시피 마크가 선 하나 차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2008년에는 노선 명칭을 변경하였는데, 기존의 1호선, 2호선 하는 식이 아닌, 홍콩 MTR과 비슷하게 노선 고유명칭을 사용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또다른 영향은 홍콩과의 합병 움직임이다. 2007년 10월 10일, 당시 홍콩 행정장관인 도널드 창(曾蔭權)은 2020년까지 선전과 합병할 것이라고 밝혔고, 같은 해 12월에는 선전 시장이 홍콩을 방문하여 홍콩 특별행정구 정부와의 합병 동의서에 서명했다. 만일 2020년에 두 도시가 실제로 합병할 경우, 뉴욕과 도쿄에 이어 소득규모 3위의 도시권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참고한 사이트)

http://ko.wikipedia.org/wiki/%EC%8B%AC%EC%B2%9C

http://en.wikipedia.org/wiki/Shenzhen_Metro

http://en.wikipedia.org/wiki/Shenz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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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2007년의 홍콩 - 센트럴 지역의 뒷산에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사람들은 홍콩 하면 위의 그림 같은 다량의 마천루가 형형색색 빛을 내는 도시적 야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것이 홍콩의 전부는 아니다. 홍콩 역시 부산과 비슷한 도농 복합시이자 자치령이며, 중심 산업이 3차 산업(서비스업)이라고는 하지만, 1차 산업(농수산업)이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림2)홍콩 섬 남서부의 뒷산에서 바라본 Lamma Island.

섬 전에 보이는 도시지역은 Pok Fu Lam(薄扶林) 도시지역이다.

Lamma Island(南丫島)는 홍콩의 대표적인 외곽 지역 중 하나로, 배우 주윤발(周潤發)이 자라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섬은 홍콩인들의 대표적 휴식처 중 한 곳이다. 이 곳에는 자동차가 없고, 건물 높이 제한이 엄격해 3층 이상은 지을 수 없다고 한다. 또한, 이 섬의 문화는 홍콩 도시 지역과는 달리 느릿느릿 흘러가는 문화로, 이로 인해 대표적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이 문화에 대한 동경이 심해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그림3)홍콩 북부의 국경지대 Ta Kwu Ling 지역

한편, 홍콩의 최북부 지역은 중국의 심천 시와 맞닿아 있는 국경지대로, 일반인은 허가 없이 출입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그 덕분에 자연 환경의 보존은 매우 잘 돼 있는 편이다. 하지만, 사진과 같은 절경은 대부분 출입통제 구역에서나 볼 수 있다. 일종의 심천과 홍콩 도심 간의 그린벨트라고 볼 수도 있다.



(참고한 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Lamma_Is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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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홍콩의 주권 양도 모식도

진나라가 홍콩에 진출한 이래 홍콩은 중국 대륙 왕조의 땅이었으나, 1842년 아편 전쟁에서 패하고 맺은 난징 조약은 홍콩 섬(위 그림의 진한 파란색)을 영국의 식민지로 둔다는 조항을 두었다. 이후 1860년에 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자, 영국은 베이징 조약을 통해 주룽 반도를 홍콩 식민지에 추가하였다.(위 그림의 진한 보라색) 홍콩이 영국에 넘어간 이후, 이전부터 이루어져 온 중개 무역항의 지위는 더 높아졌고, 영국인에 의한 개발이 시작되었다. 또한, 1898년, 영국은 신계 지역을 99년간 조차하기로 청과 합의했다.(위 그림의 연한 보라색)

File:Hktram1930s.jpg

(그림2)1930년대 홍콩 섬의 트램

땅만 넓힌 게 아니었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홍콩에는 각종 영국 제도가 도입되었고, 서양 종교의 선교사들이 학교를 세우고, 홍콩 달러화가 발행되는 등 전체적인 서양화 및 영국화의 흐름이 이어졌다. 또한, 인구 역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841년에는 약 7450명이던 홍콩의 인구는 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급성장하여, 1941년에는 약 160만 명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 역시 줄줄이 문을 열었다. 1888년에 센트럴과 빅토리아 피크를 잇는 피크 트램(Peak Tram/山頂纜車)이 개통하였고, 1904년, 홍콩 섬 북부에 트램이 개통하였으며, 1933년에는 대형 버스 회사 두 곳이 인가를 받는 등, 대중교통 역시 착착 구비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흐름은 1941년 중일전쟁 시기에 일본군이 홍콩에 진주하면서 제대로 꺾이고 말았다. 1941년 12월 25일, 일본군이 홍콩에 진주하면서, 일본군은 다른 점령지들과 마찬가지로 전시 경제 체제를 홍콩에 적용하였다. 홍콩달러의 사용이 금지되고, 일본 군용 엔이 공용화폐가 되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이는 일반 시민들의 식량 및 위생 사정 악화를 불러왔으며, 이로 인한 결과는 극심한 인구 감소였다. 1941년에 약 160만 명이던 홍콩의 인구는 1945년 영국이 홍콩을 수복한 직후에는 60만 명으로 줄어 있었다.

(그림3)1960년대의 홍콩

그러나, 홍콩은 국공 내전을 거치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공내전에서 중국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많은 수의 본토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넘어갔다. 특히, 상하이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또, 1950년대에는 중국으로의 교역길이 막히면서 중계무역항으로써의 홍콩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됐다. 그러자, 중국에서 넘어온 인력들을 바탕으로 홍콩은 1950년대에 경공업이 싹트게 된다. 1960년대에는 직물 산업이 성장하면서 홍콩 경제가 한껏 더 발전하였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의 여파로 1967년에 홍콩에서 좌파들이 주도한 대폭동이 일어나 홍콩 전체가 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한, 1970년대 문혁의 종료 이후 시작된 개혁·개방 정책과 중국에 비해 높아진 임금으로 인해 홍콩의 공업은 쇠퇴하고 말았다. 또한, 중계 무역항으로의 입지 또한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그림4)2007년의 홍콩

1980년대 들어서는 홍콩을 중국으로 반환하는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가 베이징을 방문하였고, 이로 인해 홍콩 내 경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어,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환율이 요동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 97년 반환까지, 중국으로의 급격한 흡수를 우려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반환 이후에는 98년도 아시아권 경제위기(한국의 IMF위기 포함)의 폭풍을 맞았고, 2001년 미국 경제 위기 및 9·11 테러, 2003년 SARS 파동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현재는 중국 본토 정부와의 긴밀한 협조 아래 과거의 위상을 넘어 중국과 공존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홍콩인들 사이에서의 본토 정부에 대한 선호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올해에 실시된 South China Morning Post(南华早报)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영국 지배 시절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을 정도다.


참고한 사이트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Hong_Kong_(1800s%E2%80%931930s)

http://en.wikipedia.org/wiki/Japanese_occupation_of_Hong_Kong

http://en.wikipedia.org/wiki/History_of_Hong_Kong#Modern_Hong_Kong_under_British_rule_.281950s_.E2.80.93_1997.29

http://ko.wikipedia.org/wiki/%ED%99%8D%EC%BD%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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