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운동
5∙4 운동의 배경에는 일본과의 복잡한 조약 관계가 있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 영국은 당시 독일의 조계지였던 산둥 반도에서 군사행동을 결행하였으며, 1915년에는 위안 정부에 21개조를 요구해 관철시켰다. 이후 돤치루이 정권이 들어서고, 중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를 한 상태여서 승전국의 지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산동 쪽의 이권은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고, 열강들이 일본을 지지함에 따라 중국은 승전국으로써의 이권을 얻지는 못할망정 자기네 땅을 뺏길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파리 강화 회의에서의 이 같은 결정이 1919년 4월 30일에 베이징에 보도되었고, 이에 격분한 학생들은 5월 4일에 대규모의 시위를 일으켰다. 이들은 21개조철폐, 산둥 반도 반환 등을 요구하였지만, 당시 돤치루이 정권은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였다. 그러나 이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6월 3일에는 1,0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체포되는 일도 있었다. 이 이후 시위는 더 빠르게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이에 굴복한 정부는 결국 독일과의 강화 조약을 거부하면서 시위대의 요구가 관철되었다.
이 운동은 중화 민국 창립 이후 최초로 벌어진 전국 규모의 항일 투쟁이었고,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확인하게 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또한, 시위 당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후일 중국공산당의 창당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186~187p.
'Fantast의 중국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5-3. 중일 전쟁 (0) | 2013.04.01 |
---|---|
5-2. 국민 혁명 (0) | 2013.04.01 |
4-3. 신해혁명 (0) | 2013.04.01 |
4-2. 청일전쟁 (0) | 2013.04.01 |
4-1. 아편 전쟁 (0) | 201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