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대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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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혁명은 1962년 마오쩌둥이 실각한 이후 덩샤오핑으로 대표되는 수정주의자들이 마오쩌둥을 제치고 실권자로 떠오르자, 이를 차단하고 다시 실권을 잡기 위해 1966년부터 10년 간 벌인 운동이다. 수정주의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해 마오는 홍위병들을 동원했다. 당시 학교를 정지시킨 마오쩌둥은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짧은 표어로 10~20대의 어린 학생들을 홍위병으로 만들었으며, 이들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했다. 공안도, 인민해방군도 그들을 제지할 수 없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모든 낡은 것들을 파괴하였다. 이들은 반혁명 인사를 지목해 자아비판을 강요했고, 문화유산들을 파괴하고 다녔으며, 소수민족 문화까지 핍박하고 다녔다. 이를 목적으로 벌어진 수없이 많은 가혹행위들이 있는데, 예를 들자면 덩 샤오핑의 아들 덩 푸팡은 홍위병들의 구타를 견디다 못해 4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결국 마오쩌둥은 기존의 방침을 뒤집고 1968년에 인민해방군을 동원해 홍위병들을 진압하기 시작했고, 활동이 중단된 홍위병들은 하방(下放)되어 농촌으로 보내졌다.

한편, 사회적 혼란이 잠재워지자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1968년에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목된 린뱌오는 1971년에 마오쩌둥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했으며, 이후 등장한 사인방이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당시 덩샤오핑이 정계로 복귀한 상태였는데, 사인방은 덩샤오핑과 저우언라이를 정계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미디어를 장악하고 공자와 린챠오를 비판하는 운동인 비림비공(批林批孔) 운동을 전개했으나, 인민들의 호응 부재로 실패했다. 한편 1976 1월에 저우언라이가 사망하자, 사인방은 덩 샤오핑을 끌어내리기 위해 저우언라이에 대한 추모 분위기 탄압 등 행동에 나섰고, 덩 샤오핑 자신도 당에서 축출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결국 같은 해 9월에 마오쩌둥이 죽으면서, 후계자로 지목된 화궈펑(华国锋) 4인방을 체포하면서 문화 대혁명은 끝나게 된다.

[참고 문헌]

박한제 외 4인 지음, 『아틀라스 중국사』 (파주: 사계절, 2007), 208~209p.

http://ko.wikipedia.org/wiki/%EB%AC%B8%ED%99%94%EB%8C%80%ED%98%81%EB%AA%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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